많이 버는 것보다 골고루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윤식(미디어 팀장)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의 양재덕 본부장을 만났다. 양 본부장의 지난 10년간 삶은 그 자체가 우리나라 실업과 자활 진영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징적이기도 하다. 양재덕 본부장과의 인터뷰는 6월22일, 인천의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 사무실에서 했다. 

 인터뷰하는 양재덕 본부장

 

실업자들에게 기댄 노동운동의 기대, 그러나 그들은 빈곤층이었다

- 인천에 경제자유구역이 생기고 송도개발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천의 일자리 사정이 좋아질까요?

“개발이 지역주민과는 깊게 연관되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첨단산업에 필요한 인원은 전국 단위로 모집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경제자유구역이 개발되면 지역을 연관해서 하도록 요청했고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습니다.”

- 실업극복을 위한 활동이나 운동의 방식에는 직접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과, 정부와 사회가 실업난을 해소하도록 운동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천본부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습니까?

“실업률이 높긴 하지만 또 어떤 곳에는 일자리가 있습니다. 남동공단의 3천개 공장들 가운데는 사람을 못 구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취업이죠. 가장 저비용으로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있는데, 인천 실업본부에는 각 구마다 지부조직이 있고, 지부 센터들은 자활센터를 다 하고 있어요. 그 자활센터들에서 하는 사회적일자리나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2천 명 정도입니다. 그리고 각 센터와 본부에서 취업알선해서 취업시키는 사람이 연간 일이천 명 됩니다.

그런데 인천의 실업자가 6만 명인데, 이 가운데 2천 명은 5프로밖에 안 돼요.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할 거냐, 이 문제의 해법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대안을 세워야 하고, 기업들도 고용을 증대하는 겁니다. 그런 정책을 고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빈곤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의 요구나 절실한 목소리를 정책입안자들이 경청하여 대안을 짜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미는 힘은 실업자들만으로는 힘들기 때문에,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합한 지역공동체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서 정부가 이쪽을 주시하도록 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실업자나 빈민을 조직화해야한다는 명제에는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쉬운 건 아니죠. 저희가 실업본부를 98년도에 만들었는데, 그때는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어요. 그때 모금을 해서 1만 가구에 쌀 반 가마씩 주는 운동을 했어요. 그때는 ‘이 사람들이 아이엠에프 끝나고 복직하면 노동조합으로 들어갈 거다’라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사람들 가운데 회사에서 퇴출되거나 부도가 나서 나온 실업자는 극소수였고, 장기 고령실업자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이거야말로 빈민운동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상조회도 만들고 그들과 맞는 조직을 시도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죠. 천 명 안팎으로 조직을 유지했는데, 묶어놓으면 떨어져 나가고, 다시 나가고 그랬죠. 지금은 이천 명 정도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공동체 운동을 통해서 자기보다는 우리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사회문제도 조금씩 인식해서 우리는 점점 주민 속으로 파고들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필리핀 가서 6개월간 주민운동 구경을 하고, 올해 초에는 미국에 가서 2개월간 배웠는데, 거기서 배웠던 키포인트는 어려운 동네에 파고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옛날처럼 어려운 동네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조회를 기초로 이곳을 파고 들어가서 이 법위를 넓히는 것이 힘을 키우는 방법이고, 그래 돼야만 정책입안자들도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업극복인천본부 사무실의 복도 게시판

-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실업운동이 시작된 것은 10년 전, 외환위기 때였다고 하겠습니다. 본부장님은 실업운동의 불을 댕긴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실업자가 막 쏟아져 나오니까, 인천의 시민단체, 종교단체들이 다 모였어요. 모아놓고 보니까 60개 정도 되더군요. 그래서 만든 것이 실업극복인천본부입니다.

그때 실업운동은 전국적으로 두 가지 흐름이 있었어요. 하나는 실업자들을 조직해서 정부가 대안을 내놓도록 압박을 가하는 투쟁중심의 운동이었고, 또 하나는 실업자는 당장 배고프니까 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그 다음에 점진적으로 힘을 키워나가자는 것이었죠.

제가 보기에 부산 동지들은 전자였고, 우리는 후자였어요. 우리는 싸우는 것보다 급한 것이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모금을 했죠. 일만 세대 돕기 운동 타이틀 걸고 천원 이천 원 거둬서 두 달 동안 8억4천만 원 모았고, 그걸로 쌀 이십 키로에서 사십 키로 나눠줬죠. 그렇게 일만 명을 모아서 상조회도 만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한계가 있는 것 같았어요. 모금해 봤자10억도 안 되고, 물론 우리에게는 큰돈이지만 이런 것이 일자리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자활로 가자고 정책토론회에서 방향을 정했죠.

자활센터 하기 전에도 99년 초에 환경사업단 만들고, 음식물 수거해서 가축먹이는 사업도 하고, 헌옷 수거해서 수출하는 사업도 했습니다.“

음식물 찌꺼기 사업,                             끝없는 시도와 실패

- 자활의 5대표준화사업 가운데 음식물찌꺼기 재활용사업의 원조가 인천이군요.

“저희가 처음 했어요. 우리가 손대기 전에는 쓰레기업자와 구가 담합이 되어서 쓰레기 묻으면 돈 주고, 쓰레기 묻은 곳에서는 썩고, 악취가 나고, 물이 흐르고 파리가 들끓었어요. 그래서 왜 이렇게 낭비 하냐고, 환경사업으로 재활용하자고 했죠. 그냥두면 쓰레기장으로 가서 10억씩 지불해야 하는데, 우리는 아파트에서 음식물 거둬서 오리에게 주다보니, 실업자 오십 명에서 백 명이 일할 수 있게 되었어요.”

- 오리사업의 결말이 어떻게 났습니까?

“오리를 첫 해에 만 오천 수를 했어요. 오리는 두 달 정도 키우면 나가야 돼요. 더 키우면 털 뽑기가 힘들어요. 병아리를 만 오천 수 키웠는데, 오륙십일 지나서 보니까, 칠천 마리가 남았어요. 팔천 마리가 죽은 거죠. 하루에 이삼백 마리씩 죽어나가는데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 오리가 왜 죽을까요? 자연사로 죽는 겁니까?

“오리가 원래 잘 죽습니다. 게다가 환경도 좋지 않았어요. 농장 건물을 잘 지어야 하는데, 우리는 집수리사업단에서 대충 지어놓으니까 환경이 나쁘죠. 음식물 찌꺼기 먹으니까 영양도 부족하고, 물기가 많으니까 설사도 많이 나고, 또 병이 나서 죽기도 했죠. 하루에 오십 마리에서 이백 마리까지, 하도 많이 죽으니까 잠을 못 잤어요. 밤 한 시까지 오리장에 있다가 집에 가면 두 시가 되는데, 잠이 안 와요. 또 얼마나 죽는 지 알 수가 없으니까. 수의사에게도 물어보고 별 짓을 해도 안 죽게 하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때 네 시 이전에 자 본 일이 없어요.

그래서 오리는 아니다, 오리를 정리하고 다음에는 닭을 했어요. 닭을 몇 만 수 키웠죠.

양계 경험이 있는 실업자를 찾아서 키우도록 했는데, 또 안 돼요. 뭐가 어려우냐면 닭똥이 그렇게 많이 나와요. 영양가가 적은 걸 먹다보니 싸는 게 많아. 싸는 게 많다 보니 사료를 많이 먹여야 돼. 그래서 시중사료보다 다섯 배, 열 배를 먹이니까, 닭이 모래주머니도 커지고 병이 생겨요. 많이 먹고 많이 싸니까 냄새도 많이 나고, 민원도 들어오고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누군가 돼지를 키우면 잘 된다 해서 9백 마리 했어요. 돼지는 가격이 안정되어 있어서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9백 마리 가운데 6백 마리가 죽었어요.”

- 돼지도 영양부족 때문에 죽었나요?

“하여튼 잘 죽었어요. 그래서 전문가를 불러서 어떻게 하는지 봤더니, 돼지에게 예방주사를 엄청나게 주더군요. 돼지는 약으로 산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돼지에게 마이신 주는 것을 하도 많이 봐서 저는 한동안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돼지에서 또 천 이백 만원 손해가고, 결국에는 다 접었죠. “

- 축산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일 것 같습니다.

“다 정리하는 게 맞는데, 정말 억울한 거야. 내가 아파트도 날리고 10년을 매일 네 시 이전에는 자 본 일도 없을 정도로 매달렸단 말이죠. 과학적으로 잘 키우기만 하면  이건 자활사업이 될 것 같더라고.

그렇게 정리한다고 어느 자리에서 이야기했더니, 누가 닭을 성공적으로 잘 키우는 곳이 있다고 알렸어요.

그래서 가 봤죠. 가보니까 기가 막히더라고. 닭에서 제일 문제는 냄샌데, 냄새가 전혀 없는 거야. 그리고 닭이 묘한 동물이라서 돌멩이나 유리 심지어는 자기 똥도 먹어요. 똥에 뭘 섞으니까 발효가 되게 하고, 나중에는 똥의 개념도 없어져 버려요. 깻묵이 부서지는 것같이 되어요. 깜짝 놀랐어요.

또 어떤 사람이 잘 한다고 해서 가봤더니 이곳에서는 천오백 수 하면서 한 달에 남는 돈이 삼백만원이래요.

그래서 생각했죠. 저건 된다. 자활사업으로 된다. 내가 십년간 했는데 그냥 물러설 수 있나, 저걸 해 봐야겠다. 우리가 급식사업도 하는데, 생협 수준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걸 내가 꼭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천시내의  실업본부사무실에 있는 간병사업단  회의실

 

 

 

필리핀에서 주민조직 훈련을 받다

- 화제를 바꾸어 봅시다. 필리핀에 갔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2003년 초였는데, 실업자들 상조회를 만들고, 자활도 수준이 올라갔고, 환경사업단 일도 지쳐갔죠. 그래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필리핀에 주민운동이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아시아센터라는 곳의 주선으로 주민운동 단체에 들어가서 자원봉사하다가 나중에는 몇 달 훈련을 받았죠.

필리핀 인구가 8천만인데, 조직된 사람이 8백만이고 해요. 그 숫자에 놀랐고, 그래서 조직방법을 훈련받고 싶다고 했죠. 선임 트레이너가 저를 어느 동네에 넣었어요. 그곳에는 오래된 공동체가 있는데 지금은 와해되다시피 했어요. 그 조직을 원칙에 입각해서 재건해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간 곳이 몬탈반이라고, 마닐라 동부의 시골과 경계선에 있는 강가의 빈민촌인데, 그곳에서 약 250가구로 조직된 공동체를 방문해서 이완된 조직을 결성하고, 조직의 원리를 터득하는 거죠. 필리핀 도시의 빈민촌은 빈부 격차가 심해서, 잘 사는 동네에는 한 집에 자동차가 두세대씩이어요. 바로 옆에는 못 사는 동네가 있는데, 면적은 잘 사는 동네 십분의 일 면적이지만, 인구는 여기가 더 많아요. 다섯 평 면적에 열 식구씩 사는 거야. 집은 공사할 때 치는 판넬 같은 걸로 지은 거예요. “

1961년도 서울 청계천. 청계천은 1957년에서 1961년 사이에 복개되었다.

 

 

- 영화에 나오는 포로수용소 비슷하겠군요.

“똑같죠. 냄새도 아주 심하고……. 그런 곳에서 빈민들 조직하면, 그냥 90퍼센트가 조직돼 버려요.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낚시질 같아서, 한 지역에서 200명만 되어도 많다 그러는데, 이곳은 칠팔십 프로 조직되고, 조직원이 몇 만 명, 적어도 육천 명은 되죠.”

- 이런 조직은 정치젹 지향이 강할 것 같습니다.

“우선 생활이 심각해요. 주거지가 국유지나 시유지에 있다는 데서 토지문제가 있고, 언제 쫓겨날지 몰라요. 땅주인인 국가는 항상 쫓아내려고 하죠. 우리나라에서 60년대 청계천하고 똑같아요. 여기서 전기, 수도, 주택문제 해결하자고 하면 잘 모이죠.”

- 필리핀의 주민운동의 조건이 우리나라의 60년대 상황과 비슷하단 말씀이군요.

“필리핀 주민운동은 육칠십년 대 청계천에서 빈민운동 하던 걸 수입한 거요. 그때 화이트 박사가 연세대학교에서 빈곤문제연구소를 만들어서 젊은 목사들이나 전도사들을 훈련하여 청계천에서 조직했는데, 이걸 중앙정보부에서 깨 버린 거죠. 그 주민운동 팀을 모두 감옥에 보내고 해산시켰고, 그래서 화이트박사가 필리핀에 가서 이걸 다시 한 겁니다. 

그래서 권오경 목사 같은 사람들이 다시 훈련받아요. 이후로 그곳은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서 조직방법론이 여기보다 정교하게 발달했어요. “

- 그렇다면 우리가 채택할 것도 있겠군요.

“시오(CO, community organizer, 주민조직가)10단계라고 하는 것이 그 조직방법론이에요. 저는 그 방법에 의해서 훈련받았는데, 우리하고 조금 안 맞는 것이 있어요. 거기는 원체 가난하니까 조직이 잘 되지만, 한국은 그 단계를 넘어섰다는 거죠. 한국은 토지 문제가 걸린 사람이 거의 없죠. 한국에는 수도나 전기 이런 것이 심각하지 않아요. 한국 빈민지역에는 수도가 들어오잖아요?

그리고 다른 것이, 한국에서는 집집이 문을 걸어 잠근다는 거예요. “

-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문을 열어줬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그랬죠. 그러나 지금은 안 그래요. 필리핀인은 한국인인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한국인끼리도 문을 안 열어주고, 대화가 안 되죠. 그래서 새로운 조직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그리고 조직전문가 문제도 있어요. 필리핀에서는 조직가가 되려면 최소한 6개월은 해야 인정을 해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자면 활동비가 보전되어야 하고, 여러 가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죠. 그러니까 조직이 안 되는 거야.

그런데, 제가 미국의 에이콘에 가게 된단 말이죠. 미국은 한국과 똑같은 폐쇄생활을 해요. 미국인들도 문을 걸어 잠그고, 심지어는 권총도 쏘는 곳인데, 에이콘이 조직을 했다고. 그 소식을 듣고 우리가 가볼만한 곳이다 싶어서 제가 갔어요. “

미국의 에이콘, 한국과 비슷한 환경에서 성공한 주민조직

- 에이콘을 어떻게 아셨는지?

“작년 11월에 에이콘 대표가 한국에 왔어요. 그때 이야기를 듣고, 대표에게 내가 미국 가서 훈련을 받고 싶다고 했죠. 그래서 엘에이(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의 에이콘에 가게 되었죠. 엘에이에서 한 달, 뉴욕 가서 보름 구경을 하고 왔는데, 미국사람들 참 실용적이에요.

한국이나 필리핀은 한 지역에 가서 몇 달 동안 지역실정 파악하고 조직적으로 구성해 나가는데, 미국은 그게 아네요. 문을 두들겨, 그리론 말해요.

‘우리 단체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 여기는 등이 어두워서 우범지대도 많고 교통사고가 잘 나는 문제가 있다. 엘에이 시가 교육비를 작년에 비해 몇 프로 예산을 올려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입을 해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직접 가입을 받아 버려요.“

에이콘 활동모습> 오른쪽 사진은 지난 4월에 있었던, 하원이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은 뉴올리언즈 주민들의 복귀를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는 시위이며, 왼쪽 사진은 올해 7월2일, 미국의 대통령 후보들을 불러서 정책 설명을 듣는 장면이다.

(에이콘의 홈페이지: www.acorn.org)

-세일즈맨 방식이군요. 그러면 얼마나 가입을 하나요?

“바로 그 자리에서 열 명 가운데 두 명이 가입해요. 아주 훌륭한 방식이야.

점심 먹고 두 시에 나가요. 집집마다 두들겨요. 오십 집을 두들기면 열두 집에서 반응이 와요. 나머지는 대꾸도 안 와요. 

‘왜 왔느냐?’

‘이런 단체에서 왔다’

그 중에 두 명은 시간이 없으니까 귀찮다고 하고, 서너 명은 반대, 평균 여덟 명이 대화를 해요. 이런 설명을 길게 하면 안 돼죠. 리플렛을 주면서 5분 내에 설명하고 가입 권유까지 하는 거죠. 가입을 하면 회비가 10달라 인데, 회비도 즉석에서 거둬요. 시엠에스 가입도 받고, 한 사람이 하루 평균 두 명을 가입시켜요.

엘에이에는 회원이 팔천 명이고, 뉴욕에는 사만 명입니다. 십 달라씩 하는 회비를 팔천 명 가운데 반 정도가 내죠. 사만불이 회비로 걷혀요. 엘에이 에이콘의 실무자가 스물다섯 명인데, 그 중에 열 명이 전문 조직가에요. 우리나라처럼 사업 프로젝트가 아니고, 회비로 충당을 해서 운영해요.

나는 깜짝 놀랐고, 이거 한국에서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뉴욕으로 갔어요. 그런데 거기는 회원이 사만명이고, 실무자가 팔십 명이에요. 더 희한한 게 조직가가 사십 명입니다. 아침 아홉시 출근해서 저녁까지 조직만 해요. “

- 전문조직가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내가 물어봤죠. 몇 년 했는지? 십이 년 경력에 육십 두 살 된 사람도 있고, 사십대, 오십대, 이십명이 전문가이고, 나머지 이십 명은 아르바이트생 써요. 고등학생들이나 그런 사람들인데, 아르바이트생들도 사 오년을 했어요. 한 번 나가면 두 명씩 회원 만들어 오는 건 똑같아요, 베테랑이나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훈련받은 데로 나가니까 똑 같아지죠.”

- 에이콘은 어떤 사업을 합니까?

“동네의 문제를 해결하죠. 우범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전등을 밝게 한다든지 경찰을 배치하도록 하든지, 자율방범을 하는 등의 방법을 추진하죠. 이런 것을 주민들이 모여서 안을 짜내서 시에다 요구하죠. 거기는 주택문제가 심각해요. 삼십 년에서 오십 년 된 주택이라서 녹물도 나오고 그래요. 이런 것을 주택업자들이 사서 리모델링을 하고, 그러면 집값이 두 배로 뛰는 거예요. 서민들의 생활이 걸린 문제죠.”

- 우리나라의 재개발지역 문제와 비슷하군요.

“우리나라 재개발 세입자와 똑같죠. 내가 만난 에이콘 회원들은 거의 남미출신이나 흑인, 어려운 사람들이었는데, 세입자들은 리모델링 하면 임대료 오르는 문제를 겪었어요. 그리고 교육문제도 있어요. 빈부격차가 심해서 교육비를 어떻게 배치하느냐 하는 게 중요해요. 거기 교육위원들이 한국의 시의원이나 국회의원과 똑 같아요. 교육예산을 어디로 가져가나 하는 건데, 서민의 입장에서 빈민 지역 학교에 많이 배치하라고 싸우는 거야. 예산을 늘리자는 투쟁을 하면 시민들이 좋아해요.”

- 우리나라 운동에도 도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시도하고 있습니다. 올 연말까지 가면 어떤 성과도 나올 것 같아요. 글도 쓰고 발표도 할 겁니다.”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구상

- 우리나라의 실업문제와 실업운동으로 화제를 옮겨 봅시다. 청년실업 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청년 실업 문제에 대안이 있어서 건의를 한 것도 있는데, 지금 공고를 나온 사람들이 구십 프로 대학에 가지 않습니까?

공고를 나와서 공장으로 가지 않고 대학을 가니까, 공장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외국인들을 쓸 수밖에 없고, 또 젊은이들이 안 오니까 기능공들은 노인들이 될 수밖에 없고, 젊은이들은 대학에 넘쳐나니까 새로운 실업이 생기고, 국가적으로도 실업이 구조화되고 있어요.

저는 이 젊은이들이 대학이 아니라 공장으로 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공장에는 월급도 적고, 전망도 없고, 안 간단 말이죠. 억지로 보낼 수는 없고, 가고 싶게 해야 해요. 그 방법이 뭐냐면, ‘중소기업에서 컨소시엄을 이뤄서 29세 미만의 노동자들을 받아라, 사람은 우리가 모아 줄 테니까’ 라는 겁니다.

기업에서 29세 미만 실직자들을 모으면 정부 보조금이 나오잖아요? 그 보조금으로 이 사람들에게 야간 대학을 가도록 하자는 거예요. 기업에 들어가면 노동자들은 무료로 대학을 가는 겁니다. 부족한 금액은 시에서 대는 겁니다. 시에도 청년실업자 기금이 있어요. 이렇게 판을 짜면, 500명을 한 번 만들고, 인천의 대공장에서도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대기업은 인건비도 비싸고 아무나 가고 싶어 하니까, 대기업들은 아무나 뽑지 말고 이 과정을 5년간 착실히 거친 사람에서 빼가라는 거죠.

중소기업을 가면 대학을 가니까 보상심리가 되고, 5년간 열심히 하면 대공장에 갈 수도 있습니다. 대공장에서는 3년간 야간대학을 갈 수도 있어요. 이런 시스템을 짜면 공고생이 굳이 비싼 돈 들여서 취직도 안 되는 대학을 갈 이유가 없잖아요.

내가 인천시에 이런 프로젝트를 냈는데, 오백 명은 너무 많으니 일단 이십 명은 어떠냐고 했어요. 그런데 윗선에서 승인을 안 해서 채택이 안 됐어요.

나는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해요. 이걸 해서 전국적으로 살려나갈려고 해요. 이렇게 하면 공고도 살게 되지 않을까요? “

- 양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일까요?

“나는 양극화가 신자유주의시대에 접어든 세계경제에서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봐요.

인천에 대우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있어요. 거기에다 우리 실직자들을 소개 할 테니 써 달라고 했어요. 열 명도 쓸 수 있다며 보내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현장에 가서 교섭을 했는데, 깜짝 놀란 게, 쓰는 사람들이 전부 1년 계약직이에요. 옛날에는 기계가 수동식이었는데 모두 자동으로 바뀌었어요. 이제는 나이 많아도 관계없고, 여성이라도 관계없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모두 손으로 했는데, 이제는 전부 기계로 한다는 거죠. 이제는 스위치만 누르면 되죠. 전부 10개월로 계약하니까 퇴직금 문제도 복잡하지 않아요.

그럼 왜 그러느냐? 지엠이라는 회사가 하청단가를 싸게 주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어요. 지엠은 세계시장에서 가격경쟁을 해야 하니까 하청 부품 단가를 후려치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죠.

그러니까 이건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세계경제 속에 편입되면서 이렇게 강요된 구조라고 봐요. 문제는 경제구조가 이렇기 때문에 이런 양극화를 구조적으로 이해를 하고,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이런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양재덕 본부장의 집무 모습

- 정부는 실업률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회적서비스를 대폭 확충하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마련된다는 좋은 면도 있지만, 그 일자리가 거의 저임금이라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의 일자리 확충 계획이 저임금 일자리를 확대하고, 결국 사회양극화를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나는 양극화의 우려보다는 칠십만 원을 받더라도 이십만, 사십만 명이 일을 하는 것이 좋겠어요. 참여자들은 칠십만 원 받더라도 일자리가 안정되게 계속 있기를 원해요. 그걸 안 하면 할 게 없단 말이죠.

많은 사람이 적은 돈이라도 일을 골고루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그럼 적은 돈으로 어떻게 살 거냐? 지출을 줄이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첫째 주택문제, 영구임대주택 지어서 주택 걱정 없도록 하고, 예방의학 발전시켜서 의료비 걱정 없애고, 교육문제도 취직 안 되는데 대학가지 않아도 되도록 해야죠.

미국 가니까, 고등학교 이학년 삼학년이 오후 두시에 마쳐서 하루 종일 테니스 치고, 댄스하고 놀아요. 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마친 뒤에는 숙제 정도 하고 노는 게 교육이지, 우리나라처럼 아침 여덟시부터 밤 열두시 까지 고문 징역살이 살리는 게 교육이 아니죠. 나는 구조적인 문제를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칠십만 원도 좋다, 대신에 주택, 건강, 교육 문제에 돈이 안 들어도 되게 하라 이겁니다.“

자활사업을 해도 돈 되는 사업을 하자

- 우리나라 실업운동의 시작은 사상초유의 실업사태를 맞이한 민중들의 요구에 의해 자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만, 지금은 이전보다 자생력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많은 단체들이 프로젝트에 의존하여 사업을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실업운동 단체들이 새로운 모색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나는 우리 실정에서 프로젝트를 안 하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프로젝트를 관장하는 부처는 노동부와 복지부인데, 특히 노동부는 일자리에 관심이 있거든요. 일자리 만들기는 우리가 하는 일과 같은 사업이에요. 돈이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지, 일자리 만드는 것은 같아요. 그러면 그걸 우리 입장에서 좋은 아이템을 개발해서 우리 일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에이콘이 시도했던 방법, 이걸 해서 획기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 자활과 실업단체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셨으면 합니다.

“번데기장사와 같은 사업 안했으면 좋겠어요. 안 되는 사업, 열한두 명 데리고 인건비 1억 가지고 이을 하는데, 일 년에 버는 돈은 이천 삼천 이렇단 말이죠. 이런 건 누가 봐도 안 되는 사업이에요. 국회의원들이 가난하게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일억 투자해서 일이천만 원 나왔으면 망한 사업이라고 한단 말이죠.

일억이 투자되었으면 최소한 일억은 나오는 사업을 하잔 말입니다. 난 그게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부천에 나눔자활센터가 있어요. 그곳은 간병사업을 하는데 전체 참가자 3백 명 가운데 간병 참가자가 2백 명입니다. 부천의 병원을 꽉 잡고 있어요. 이 기관은 자질구레한 것 안 해요. 부천시에 자활센터가 몇 개 있는데, 역할분담을 했죠. 집수리는 너희들이 해라, 간병은 우리가 하겠다. 그러니까, 이 센터는 간병에 총력을 집중하고, 다른 사업 한 두 개 더 붙여놓은 거죠.

일을 잘하니까 사회적일자리를 준단 말이죠. 참가자 가운데 백 명은 자기 밥벌이 하도록 하고, 경쟁력 있으니까 관장에서 실장 전부 붙어서 거기에 올인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도 직접 간병을 해야 해요. 관리만 하면 관료가 되니까.

우리 실업이나 자활도 누가 보더라도 욕 듣지 않게 딱 만들어 놓고, 그러고 나서 에이콘 같은 것 하자 이 말입니다.

지역에서 이 사람들만 주민 공동체로 만들어서 단련시키고 파고들면 됩니다. 그 사람들의 문제에 파고들어 해결하고, 성공적인 공동체 만들고 지역에서 단단한 대중토대 만들고, 그러면 우리 살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양 본부장은 관록을 바탕으로 운동진영의 웃전이나 지킬 수 있는 나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청년이었다.

청년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찬 가슴과,  미래를 설계하느라 바쁜 두뇌, 새로움을 희구하는 호기심이 가득 어린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양 본부장은 진정한 청년이 아닐까?

※참고 : CO 10단계

다음 글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www.kfem.or.kr)에 실린 주민운동 10단계의 요약이다.

아래 글을 작성한 사람은 오관영 씨이다.  (편집자)

� Ten CO Steps

  CO(Community Organizer) 훈련의 10단계는 다음과 같다.

  1) Integration

  마을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술 먹는 것, 장례, 세례 등 행사참여, 농사․어업 등 참여가 여기에 해당한다.

  2) Social Investigation

  지역에 대한 통계 등 정량적 조사가 아닌 인지조사 등 사람에 대한 정보와 정성조사가 중요하다. 한 지역에서 20-30명의 사람을 만나 지역의 문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3) Tentative Planning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문제들-전기, 물 등-에 대한 기초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가난이 가지고 오는 전기와 물 등이 이슈가 된다.

  4) Ground Work

  When?, Where?, Way?, What?, What?, Who? 등 마을에서 3-4명 정도의 만남을 통해 입장을 확인하고 어떤 사람들에게 역할을 줄 것인지에 대한 사전 작업이다.

  5) Pre-Action Meeting

  행동하기 전 사전미팅을 통해 어떤 것이 진짜 이슈인지에 대한 파악과 행동에 대한 의미를  공유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전기가 문제라면 비싼 것이 문제인지 아니면 불법적인 사용이 문제인지를 확인하고 행동의 대상-전기회사가 될 수 있다-를 결정한다.

  6) Role Play

  한국의 역할극과 비슷하다. 예를 전기회사를 항의 방문한다거나 시장을 만나는 상황을 설정하고 역할을 나누어 상황을 연출하는 것을 통해 실전에 대비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권위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감을 갖도록 하여 침묵의 문화를 깨는 것이다.

  7) Mobilization

  주민들이 동원해서 협상하는 구체적인 집단행동과정이다. 예를 들어 제니터 피쉬(청소 물고기)에 대해 환경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그물에 제니터 피쉬를 달고 시위를 하는 포퍼먼스도 포함된다.

 

  8) Eval!uation

  계획에 기초한 평가이다. 잘못된 점과 잘된 점 등을 이야기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라구나 호수에서 해상시위를 한다고 한 경우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고 어떻게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음단계를 고민한다.

  9) Reflection

  행동에 대한 철학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주민들을 의식화시키는 과정이다. 변화된 행동 등 참가자들의 이야기-무엇을 배웠고 무엇이 모자랐는지-를 경청하는 과정이다. “왜?”라는 Socratic 식의 질문을 주고받는 방식이다.

  10) Organization

  이슈에 대한 승리와 새로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영구적인 PO(People's Organization)을 건설하는 과정이다. 정관을 만들고 선거를 통해 대표와 운영위원을 선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