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콘, 지역과 노동의 조직화를 위한 도전

                                                                           정윤식(미디어 팀장)

 노동조합의 조직률을 날마다 떨어진다. 대공장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조합들은 비정규직이나 서비스업 노동자에 별로 관심이 없다. 굴뚝산업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서비스업은 확장된다. 개별 서비스업 현장은 소규모이며 분산되어 있다. 그들의 작업형태나 근무시간은 다양하다. 서비스업에 종사하거나 비정규직인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잘 보호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도움은 너무나 절실하다. 그들의 소득수준은 낮고, 작업환경도 열악하다. 그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위 질문을 보고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현실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단체가 있다. 그 단체의 이름은 에이콘이다. 에이콘은 ‘지금당장의 개혁을 위한 지역공동체들의 협회 (Association of Communities for Reform Now)'라는 뜻을 가진 조직이다. 에이콘의 회원은 대부분 비정규직과 중하위 소득 가구이다. 에이콘은 지역운동과 노동운동을 겸한다. 에이콘은 스스로를 하이브리드 조직이라고 한다.

에이콘의 대표인 웨이드 레스키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10월30일부터 사흘 동안 인천과 창원, 서울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전실련이 주최한 이 행사에서 프랑스의 ‘실업에 반대하는 새로운 연대’의 제시카 홀크도 발제했다.

기자는 레스키의 발제문을 번역했고, 창원과 서울에서 열린 행사에도 참석했다. 레스키의 강연도 들었고, 그의 발제문도 읽었지만 미흡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이 기사는 그런 미흡함을 메우기 위해 썼다. 레스키의 발표내용에 관심 있는 분을 위하여 발제문을 기사의 뒷부분에 붙인다.

** 서부 개척가 같은 레스키 **

웨이드 레스키는 깡말랐고, 키가 컸다. 격식과는 거리가 먼 듯한 그의 행동에서 서부개척영화에 나오는 배우가 연상되었다.

그러나 그는 서부의 광야와는 상관없는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 출신이다. 그는 지난 40년간 이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 활동을 했다. 이제 그는 미국 서부로 진출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를 돌면서 에이콘 조직을 확장하고 있다.

 창원에서 개최된 토론회. 왼쪽에서 두 번째가 레스키, 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제시카 홀크

레스키는 한국에 오기 직전, 인도에 머물렀다. 에이콘의 해외 조직은 아르헨티나, 캐나다, 패루, 케냐, 인도 등에 있다. 이들 가운데 인도에서는 FDI라는, 해외직접투기자본을 감시하는 활동을 한다. 레스키는 인도에서 소매점 주인, 행상, 노점상, 상인 등을 조직했다고 말했다. 인도에는 소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4천만 명이나 된다.

올해 인도에서는 소매업 종사자들에게 암울한 소식이 닥쳤다. 월마트는 인도 최대의 이동통신 업체인 바티와 손잡고 앞으로 7년간 인도에 월마트 매장을 열다섯개 짓기로 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대형마타가 생긴 뒤로 문을 닫아버린 작은 가게들을 생각해보라. 4천만 명에 이르는 인도 소매상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쉽게 상상 된다.

레스키는 월마트의 문제에 대항하는 운동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WARN(월마트의 즉각적인 개혁을 위한 연대)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월마트노동자협회(WWA)를 조직하는데 힘을 쏟기도 한다. 노동자협회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지만, 노동조합과 다르다. 레스키는 2006년도에 발행된 ‘월마트-21세기 자본주의 얼굴’이라는 책에 ‘월마트 노동자협회 조직플랜’이라는 장을 썼다.

** 노동자를 지역 중심으로 조직한다 - 에이콘 조직방식 **

월마트의 노동자협회에는 단체행동권이 없다. 단체행동권이 없으니 이 조직은 노동조합이 아니다. 레스키는 도리어 노동자들에게 단체회합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체회합권이란 노동자협회를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레스키는 노동자들이 노조뿐 아니라 다른 조직이나 협회에도 참여할 선택권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라는 조직 형태에 너무 매달리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스키는 반노동조합 주의자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노동조합의 확장에 대해서 말한다면, 에이콘은 이 분야에서 대단한 성과를 이룬 조직이다.

에이콘이 노동조합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0년경이다. 그때까지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수십 년간 침체되었다. 에이콘은 이러한 흐름을 조직률 상승으로 돌려세웠다. 에이콘은 기존의 대형 노동조합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비정규직, 돌봄노동, 공공부문, 시간제 노동자들의 조직에 나섰다.

노조에 대한 에이콘의 관심은 지역지부를 찾는 회원들의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을 전후한 시기, 에이콘은 회원들이 다수 종사하는 비공식 부문을 대변할 노동조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미국 노조의 조직력은 매우 약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관심 갖기 어려웠다. 에이콘은 회원들을 조직하여 노조를 만들었는데, 이 조직은 이후 미국국제서비스노동조합SEIU에 속하게 된다. SEIU는 이후 조직이 크게 확장되었다. 일리노이 주에만 조합원이 7만 명인데, 이 사람들은 모두 에이콘이 노조를 만든 후에 조직된 사람들이다. 에이콘은 올해가 끝나기 전에 로스앤젤레스의 6만여 비정규직 트럭 운전기사들이 노동조합원으로 조직될 것으로 예상한다.

** 노동자 조직화와 다수노조 **

레스키는 공식부문 노동자들을 다수조합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기존 노동조합이 소수조합을 포괄하지 않는다면 다수조합은 점점 고립분산 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다수조합과 소수조합이라는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미국의 노동조합제도를 잠시 살펴보자.

미국의 노동조합은 전국노동관계법(NLRA, 우리나라의 노동조합법 같은 것)의 영향을 받는다. 노동조합이 직장에서 단체교섭 당사자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 노조가 다수노조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다수노조가 되기 위해서는 동일한 직장 노동자들의 과반수가 조합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제도가 사용자측이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는 방편으로 이용된다. 사용자는 협상의 상대인 노조의 합법성 여부를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에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노조의 단결력을 저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쓸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레스키는 그의 발제문에서, ‘노동자들이 노조와 노동자협회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지,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등록증을 받기 위한 미로를 헤매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에이콘이 노조가 아니라 노동자협회와 같은 조직을 만드는데 치중하는 것은 정상적인 노동조합의 발전을 사실상 저해하는 현행제도를 피해가기 위한 방편이기도 한 것 같다.

다수노조를 만들 수 없는 사업장에서 에이콘과 SEIU는 소수노조 운동도 하고 있다. 소수노조는 같은 산업(또는 작업장)에서 다수노조가 되지 못한 조합조직을 말한다. 소수노조는 단체협상에서 대표권은 없지만 조합 활동은 할 수 있다. NLRA 7장은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지위가 아닌 노동자들의 단체도 사용자에 대항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구체적인 행동으로는 몸벽보 착용, 불만족한 내용에 대한 사인, 요구서 제출 등과 같이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들이 있다.

소수노조는 노조 조직의 틈새를 파고드는 조직형태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수노조가 영원히 소수노조로 남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수노조를 만들 수 없는 곳에서는 소수노조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블랙 하우스라는 조직가가 쓴 ‘다수노조론’ (Majority Unionism)에 의하면, 현재 미국의 노조 조직률은 전체 노동자의 13.5%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를 그냥 둔다면 미국에서 노동자 조직은 거의 소멸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현상의 대안으로 등장한 운동방법 가운데 소수노조도 있고, 노동자협회도 있는 것이다.

 서울 프란시스코 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국 사례 발표를 듣는 레스키. 제시카 옆에 앉은 이는 제프 스타크이다. 스타크는 한국어, 영어, 불어,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 에이콘의 생활임금 캠페인 **

에이콘이 1992년부터 전개한 생활임금 캠페인에는 공공부문의 우세임금 캠페인과 공중발의권 운동이 대표적이다.

우세임금(prevailing wage)은 정부와의 계약에 의한 사업에 참가하는 노동자(공공부문 계약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는 최저임금이다. 미국에서 공공부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업체는 정부와 수의계약을 맺거나, 입찰에 응모하여 선정된다. 특히 입찰에 의해서 업체를 선정할 경우, 저가예산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의 저하를 막기 위한 법이다.

에이콘은 주, 시, 군 단위의 지방정부가 우세임금을 올리기 위한 캠페인을 했다.

생활임금 캠페인의 또 다른 방식은 공중발의권 운동이다. 공중발의권이란 지역선거를 할 때 최저임금에 관한 투표도 같이 하도록 하는 것이다. 발의는 서명을 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에이콘은 이 캠페인으로 플로리다, 오하이오, 애리조나, 미주리, 콜로라도 등 여러 주의 최저임금을 올렸다고 한다. 최저임금은 연방에서 정한 최저임금 수준보다 일정한 액수 또는 비율로 더 높게 하는 경우가 많다. 최저임금 인상 수준이 낮다 하더라도 전체 액수는 수십억 달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에이콘은 ‘매년 십억 불 더 높게!’라는 캠페인을 구호를 채택했다.

** 소득강탈 방지 프로그램 **

래스키는 원고에서 소득저하를 막는 프로그램이라고 했지만, 강연에서는 소득을 도둑맞지 않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에이콘은 신용카드나 고리 대부업체와 대항하여 싸웠다.

에이콘의 활동에는 1977년에 제정된 지역재투자법에 관한 것도 있다. 이 법은 당시 에이콘을 비롯한 풀뿌리 조직들이 벌인 캠페인의 산물이다. 이 법에 의하면, 일정한 지역에서 조성된 범위 내의 기금(모지기론 같은 것)은 그 지역보다 더 부유한 지역의 개발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이 법이 조성된 지 30년이 흐른 지금은 기금이 많이 축적되었으며, 최근에는 에이콘과 지역재투자연맹 같은 조직들이 기금의 사용에 관한 법의 제정 운동을 했다. 2005년에 새로운 규칙이 시행되었고, 이에 따라서 축적된 기금의 일정 부분은 지역사회를 위해 투자하거나, 지역의 중하위소득계층에게 대부하게끔 되었다. 에이콘은 이런 운동으로 매년 5천~1만여 회원 가구들이 생애 최초 주택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에이콘은 세금 급여 접근센터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 센터는 세금환급이나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각종 급여에 관한 상담을 한다. 사람들이 근로장려세제(EITC)에 해당하도록 돕기도 했고, 아동양육공제를 받게도 만들었다.

에이콘의 활동에서 흥미로운 것은 HR블록이라는 회사와의 사업이다. HR블록은 우리나라의 세무사무소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절세를 비롯한 세무상담을 한다. 레스키는 발제문에서 에이콘이 '2008년에 HR블록(예전에 우리가 깨부순 적이 있는 회사들 가운데 한 곳)과 파트너십을 맺어 10만 가족에게 1억 달러의 세금환급을 다룰 것' 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예전의 원수가 내일은 동지가 된다는 말인데 정말 그런지 궁금해서 신문기사를 검색했다.

에이콘은 2004년에 HR블록을 비난한 적이 있다. 당시의 기사를 보면, 에이콘의 조직 담당자가 HR블록은 가난한 고객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세금을 단기간에 환급받을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장기 환급을 선택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그랬던 에이콘이 내년에는 HR블록과 팀을 만들어서 세금환급 교육을 한다는 것이다. 에이콘과 HR블록과의 싸움결과, HR블록측이 양손을 든 모양이다. 레스키는 2008년에 10만명 회원이 1억달러를 환급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레스키는 자신의 블로그(http://www.chieforganizer.org)에 한국 기행문을 썼다. 위 사진은 블로그에 실린 한국 금속노조 조합원의 투쟁 조끼. 전실련은 레스키에게 투쟁 조끼를 선물했다. 레스키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조끼가 활동가들의 연대감을 조성하는데 환상적인 도구인 것 같다고 썼다. 그는 블로그에 이 조끼를 미국의 투쟁현장과 지역 사무실 실무자들이 착용하는 방법을 고민해야겠다는 글을 썼다.

** 우리도 에이콘처럼 할 수 있을까?  **

에이콘의 활동에는 원칙이 있다. 첫째, 모든 회원은 회비를 납부해야 하며, 민주적이야 하고, 회원들이 단결, 행동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에이콘에는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이 미국 전역에 30만 명이나 있다.

전실련 양재덕 위원장은 <실업과자활>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운동이 에이콘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에이콘의 사례를 접한 여러 사람들이 에이콘의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창원에서 민주노총을 대표하여 토론에 나선 전창현 씨는, 가사 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하여 에이콘과 같은 제3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민주노총에 대한 자본측의 거부감과 같은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할 때, 이런 사업을 민주노총이 단독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회원들이 대부분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고, 에이콘과 같이 노동조합의 형태가 아닌 조직인 한국가사관리사협회의 김경희 총무국장은 에이콘의 조직방식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