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한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 자활의 희망입니다

남원지역자활센터 양기운 관장

 

남원자활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는 양기운 관장. 왼쪽부터 이성조 부산실업극복지원센터 사무국장, 정은숙 부산강서지역자활센터 센터장, 양기운 관장, 정윤식 미디어 팀장.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자신에게 필요한 재화를 전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면 화폐나 유통체계는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생산품목과 인간욕구의 다양화로 인해 사람들은 분업을 할 수밖에 없고, 분업으로 생산된 재화를 교환할 때 가치를 매기는 도구로 화폐가 사용된다. 유통은 세상에 산재하는 다종다양한 재화를 적재적소에 적당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체계이다. 요컨대 유통이란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안겨주기 위한 이로운 시스템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통은 비단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해서만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들을 지배하기도 한다. 소비자에게 상품의 제조과정이나 생산윤리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그저 값싸고 보기 좋은 제품만 찾을뿐이다. 유통업자는 이러한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는 생산자를 찾는다. 생산자들은 어떻게든 값싸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상품을 생산하면 된다. 대량판매 사회에서 생산자로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말은 유통업자에게 선택되었다는 말과 같다. 생산자는 보기 좋고 그럴듯한 상품의 판매를 위해 가외의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광고나 상품의 포장 같은데 드는 비용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현란하고 편리한 제품 한 개에는 이처럼 저가를 향한 노력과 이미지 조작을 위한 엄청난 노고가 깃들어 있다.

이러한 대량유통, 대량소비 시스템은 과잉생산을 유발하기도 한다. 적지 않은 상품들이 진열대에 오르지 못하고, 불량품이나 재고품으로 폐기처분된다. 또한 유통업자는(근원적으로는 소비자가) 생산자들을 경쟁시키기 때문에 유통체계에서 밀려난 생산자는 일거에 생산을 중단해야하는 사태를 맞기도 한다. 생산과 소비의 효율적 연결망으로 태어난 유통이 오히려 그들의 주인을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남원자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인 새벽영농조합법인의 홈페이지 (www.nw4u.kr)

남원지역자활센터의 양기운 관장은 원래 남원의 농사꾼이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던 자영농장이 1996년에 유기농 재배를 인증받았을 정도로 친환경농업을 실천했다.

그가 자활사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가을, 자활제도가 문을 열었을 때였다. 남원지역의 조건부 수급권자들 300여명 에게 일을 시켜야 한다는 주문을 받은 그는 참여자들과 낫을 들고 풀을 베기 시작했다. 그는 일부 참여자들로 공동체를 만들어 예의 유기농 농사를 했다. 2002년에 공동체원 10명이 3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려서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호시절은 잠시였다. 공동체는 생산품을 한화유통에 납품했는데, 그 회사가 롯데로 넘어간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판로도 일거에 막혀버렸다.

남원자활의 지원을 받아 운영 중인 사회적기업 새벽건축 입구

2004년 여름에 거래처가 끊어져 버렸고, 공동체 참여자 4명이 빠지고 6명만 남았다. 남원자활은 고민을 했다. 거래처 한 곳만 바라봐서는 안 될 일이었다. 시장은 다양한 품목을 요구한다. 2004년 말, 영농법인을 등록했고, 2005년 7월에 식당을 열었다. 남이 사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양기운 관장은 자신들 방식으로 농산품을 시장에 내어놓으면 상품성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남원자활이 생산한 채소를 비롯한 농산품을 그럴듯하게 포장 하려면 여기에도 돈이 들어간다. 그러나 남원자활의 생산품은 안 쓰는 박스(재활용품이 아님)에 모아서 담는다. 이 농산물은 일차적으로 남원자활의 식구들이 가져가고, 주변의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소비한다. 이런 방식으로 생산품은 시장에 내어놓을 필요도 없이 완전히 소화되고 있다.

남원자활의 순환영농 체계

남원자활은 독특한 농산물 공급 사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남원자활은 유기농 제품을 매월 두 차례 소비자들에게 택배로 부친다. 농산물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약속이랄 수 있는 전제가 있다. 공급되는 제품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원자활도 사는 사람에게 가격을 묻지 않는다. 물론 1회 5천원 내외라는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소비자는 그보다 더 많이 지불할 수도 있고, 혹은 형편이 안 되어 이보다 적게 지불할 수도 있다.

“우리는 돈을 내는지 안 내는지 체크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비자는 생산한 것을 선택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선택권을 유보하는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번 1kg을 기준으로 포장하지만, 야채가 없으면 우리가 알아서 담습니다.”

회원들에게 보내는 유기농 채소를 포장하는 모습

이러한 소비가 가능한 것은 생산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신뢰관계를 양기운 관장은 ‘어머니 밥상 마음’이라고 불렀다.

어머니 밥상마음은 물질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가족들을 위한 밥상을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그 밥상에 차려진 음식을 먹는 가족들의 믿음을 의미한다.

양기운 관장은 요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예전보다 희박하게 된 이유가 물질이 너무 풍족해 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연계에는 풍년과 흉년이 있는데, 흉년이 들면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서 골고루 먹고, 풍년이 들면 편식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란 것이다.

“결핍을 모르는 세대는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부족하지 않으면 사랑이 싹트지 않습니다. 자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최저생계비나 자활급여로 보호받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크게 결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학력이 떨어지고, 지금까지 남에게 인정받은 적 별로 없고, 직장생활도 오래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서로 상대를 옭아맵니다.”

왼쪽 사진은 돼지 우리이다. 뒷쪽의 밝게 보이는 곳은 새끼 돼지가 전등에서 발생하는 열로 난방을 하는 모습이다. 이곳의 돼지우리는 더럽고 냄새가 많이 날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상과는 달랐다. 돼지 우리 내부는 톱밥과 다른 소재들이 깔려 있어서 청결하고, 냄새도 별로 나지 않는다.  오른쪽 사진은 두엄을 만드는 곳이다. 짚풀과 음식물 찌꺼기, 돼지우리를 청소하고 난 부산물 등을 섞어서 거름을 만든다. 두엄의 색깔이 각각 다른 것은 진행 정도에 따라 숙성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 관장이 자활사업을 처음 하면서 목격한 것은 배려가 없는 폭력적 질서관계였다. 참여자들이 퇴비를 만들기 위한 풀을 베는 작업장에 물주전자를 가져다주었다. 양 관장은 물주전자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다투던 사람들을 인상 깊게 기억한다. 그들은 상대를 배려하지도 않았고, 양보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힘 있는 사람이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질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양 관장은 이러한 폭력적 질서 가운데서 가능성을 보았다. 그들은 결핍했다. 배려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서만 나온다는 것이 양 관장의 신념이었다.

남원자활이 운영하는 새벽만나식당. 남원예술회관 옆에 있다.

남원자활의 상추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있다. 상추를 심는 두둑이 줄지어 있고, 사람들은 이랑에 앉아 일을 한다. 아침에 작업장에 들어갈 때 사람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인다. 그들이 피하는 자리는 가장 바깥쪽 줄이다. 가 쪽에서 일을 하면 머리가 비닐하우스의 지붕에 맺힌 물방울에 닿기 때문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진하여 가에 앉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찍 와도 그곳으로 갔고, 다른 동료들보다 늦게 와도 자기 자리인양 그곳을 찾아갔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던 동료들도 그 자리에 먼저 앉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작업하는 모습

양 관장은 사람들이 그렇게 변하는데 1년6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새로운 리더십은 오른손이 모르게 왼손이 하는 거예요. 상추밭에서 그런 리더십을 발견한 거죠. 그런데 그런 리더십이 항상 참여자들 가운데서 나오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이런 리더십은 실무자들이 길러야 합니다. 관장이나 실무자들이 한 삼년 하면 된다고 봐요. 저는 실무자들에게 현장에서 같이 일을 하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실무자들이 일을 배우고, 나중에는 일을 섞습니다. 많이 배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생활을 섞을 수록 가슴을 엽니다. 이렇게 섞이면, 나중에는 아침에 서로 얼굴만 마주봐도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압니다.”

부자들은 일이 섞이고, 가슴을 열고,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을 싫어한다고 양관장이 말했다. 그러나 자활은 이런 것을 강제로 학습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과정으로 인격 전체를 지배하는 태도를 변화시키고,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하고 생활 속에 받아들인다고 했다.

양 관장은 자신이 노동주의자라 또는 속 노동주의자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속 노동주의는 앞에 말한 어머니 밥상마음과 같은 의미로 한 말이다. 그는 자활참여자들이 자발적 초과노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초과노동을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은 노동을 단순히 급여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도구로 삼아야만 가능할 것이다. 양 관장과 남원자활의 10년 역사는 타의에 의한 노동에서 자발적 노동으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 섞이는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새벽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는 외양간이다. 오른쪽 사진은 올해 추수한 논에서 나온 짚이다. 소들은 친환경적으로 재배한 벼를 끓여만든 죽을 먹는다. 왼쪽 사진은 소죽을 끓이는 모습이다. 이곳의 소는 사료에 의존하지 않고, 소죽과 풀을 먹고 자란다. 남원자활은 최근 소를 한 마리 잡아서 회원들에게 보낸 적이 있다. 쇠고기를 600g에 1500원 하는 시중가보다 싼 1천원에 판매했지만, 18개월 된 소를 판 값은 송아지로 구입할 때  가격에 비하여 150만원 정도 많았다고 한다. 주변에서 소를 더 많이 키우라고 하지만, 일단 현재의 규모보다 확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는 유기농 쌀재배를 하는 논에서 나오는 짚으로 끓인 죽을 먹어야 하는데, 현재의 논농사 규모로는 더 많은 소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남원자활의 순환영농은 사회적기업인 새벽영농조합법이 실천한다. 새벽은 66명의 참여자로 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새벽은 남원시내에서 발생하는 남은 음식물 10톤 가운데 1톤을 처리한다. 남원자활은 처음에 이 음식물을 오리에게 먹이거나 지렁이사육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런 방법은 퇴비화 또는 사료화공정에 비하여 친환경적이지만 단점 또한 있었다. 오리사육은 판매처가 문제였고, 지렁이 사육은 시설투자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2002년부터 도입한 방식이 배출자 책임분담에 의한 소규모 분산처리 방식이다. 주민들은 절임류의 포함여부에 따라 음식물을 분류하여 내어 놓는다. 새벽영농법인은 음식물을 매일같이 수거하여 냄새 문제로 골치 아플 일이 없고, 짠 음식을 분리하여 수거하므로 침출수 문제도 없다. 

이렇게 수거한 남은 음식물은 돼지에게 먹이거나 두엄에 혼합한다. 음식물과 혼합된 두엄은 거름으로 숙성되어 유기농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사용된다.

양기운 관장

양기운 관장은 남원자활의 시도가 자활사업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자활이 투자효율이 없거나, 오랫동안 매달려야 하는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자활센터들이 틈새시장을 뚫어서 성공하더라도, 이 분야에 대기업이 뛰어들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자활사업단 끼리 마저 경쟁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농촌은 뉴프런티어라고 양 관장은 말했다. 그는 경쟁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도시에서 또 경쟁하게 만드는 것보다 농촌으로 가는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는 정직하게 노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귀농을 안내하고, 농촌의 자활기관들은 이들의 정착이 가능하도록 자원도 연계하고, 일자리도 마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기사 : 정윤식 미디어 팀장>